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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 you like coffee?

  • Jun 2
  • 3 min read

written by 김순




나는 커피를 좋아한다. 오늘같이 아침부터 종일 봄비가 내리는 날은더욱 커피를 자주 마신다. 종이 필터를 타고 흘러내리는 쓴맛과 향기는 하루 일상을 결정짓는다. 스믈스믈 깨어나는 게으름을 누르기도 하고 오늘 할 일을 챙겨보게 한다.

따뜻한 목넘김을 느끼면서 맛있는 음식과 먹고 마시는 즐거움도 느낀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즐거움 가운데 미각은 빼놓을 수 없는 삶의 요소, 커피 한 잔을 마시는 동안 만큼 인생은 아무 걱정 없이도 살아갈 듯하다.

생각해보니, 내가 커피와 맺은 인연은 꽤 오래된 것 같다. 다섯 형제와 이모 ,삼촌까지 북적대며 거의 열 명 가까운 대가족으로 살았던 내 어린 시절, 아침 식사 시간은 다들 정신이 없었다. 은행 다니면서 따로 밥상을 받았던 아버지는 언제나 진한 커피 한 잔으로 끝을 맺었다.대여섯살 짜리 막내딸은 작은 주전자와 커피용품을 미리 준비해 늘 아버지 칭찬을 받곤 했다.60여년 전이었던 1960년대 초,가난한 대한민국에서 국산 커피는 생산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부산 서면 하얄리아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인스턴트 커피는 구하기도 어렵고 값도 비쌌지만 어찌어찌 우리집까지 들어올 수 있었다.

붉은 색 병두껑에 큼직한 흰 색 별이 인상적이었던 미제 맥스웰 유리병 커피....티스푼으로 커피 가루를 조금 넣고 따뜻한 물과 설탕을 듬뿍 녹여마시면 대여섯 살 꼬마에겐 엄청 맛난 설탕음료가 되었다.반면 아버지의 커피 취향은 매우 진했다.크지도 않은 커피잔 하나에 커피와 크림,설탕을 각각 세 스푼 씩이나 넣었다.나는 칭찬 받기 위해 아침마다 오랫동안 아버지의 커피 심부름을 자청했고 ,성장하면서 점차 짙고 씁쓸한 본연의 커피맛도 알게 되었다.

1970년대 중반,대학생이 된 나는 여전히 커피를 좋아했고 친구들과 수다떨던 곳도 주로 음악다방이었다.그 시절 다방에서 제일 비싼 메뉴는 블랙커피 위에 아이스크림을 잔뜩 올려주던 비엔나커피였다.요즘같이 리필(refill)개념이 없던 시절 ,비오는 날엔 같은 자리에서 커피를 두 잔이나 거푸 시켜 마셨다.돈없던 대학생으로선 최대의 사치였다.

취업을 하고 나서도 아침 커피타임은 사회 초년생에게 인상적이었다. 정신없이 아침밥도 못먹고 출근한 회사 사무실,자리에 앉으면 어느 동료가 근처 다방에 전화하는 소리부터 들렸다.” 여기 *** 부서인데, 커피 5잔,담배 1갑 부탁해요.”

회사 주변엔 배달 커피를전문으로 하는 다방이 즐비했고, 여주인 마담과 레지라 불리던배달 아가씨들이 바뀌면 인사차 서비스를 돌리며 친분을 쌓아가기도 했다. 초여름이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보이는 불리던 수삼 뿌리를 갈아넣은 찬 우유잔을 돌리기도 했고,추운 때는 달걀 노른자가 동동 뜬 쌍화차가 불현듯 날아오기도 했다.매일같이 커피 마실 일은 너무 많았고,아무리 커피를 마셔도 밤에는 끝없이 잠이 쏟아지던 ,푸르고 푸른 젊은 시절이었다.

이후, 오랜 시간이 흐르며 커피 안에 포함된 맛 처럼 인생의 쓴맛 단맛 신맛을 겪어가면서 삶에도 쉼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천천히 커피 한 모금을 맛보는 시간은 급행열차도 꼭 들러야 하는 간이역,혹은 형체없는 생각이 훨훨 날아다니는 꽃밭의 노란 나비가 되기도 했다.

독일의 작곡가 바흐(Bach)의 곡 중에는 <커피 칸타타> 도 있다.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바흐는 대개 진지한 종교적 칸타타를 주로 작곡했지만,이 커피 칸타타는 가볍고 통통 튀는 분위기다.칸타타는 성악곡의 한 형식, 18세기 당시 유럽에 유행하던 커피맛에 빠진 딸에게 아버지가 그만 마시라고 잔소리하는 내용을 담았다.바흐는 젊은이들이 주로 모였던 그 시절의 카페에서 이렇게 부담없는 곡도 발표하며 당대의 어린 남녀들과도 어울렸던 모양이다.

커피의 맛은 기본이 쓴맛이다. 쓴맛은 우선 기운을 끌어올려주고 머리를 맑게 하는 효능이 있다.인삼이나 홍삼,봄나물이 대표적인 식품이지만,커피나 녹차에 든 카페인 때문에 각성되는 느낌을 대부분 좋아한다.쓴맛은 한의학적으로 화(火)에 속하며 심장을 보하는 맛이다.심장을 안정시키고 진정시켜 준다.기미론(氣味論) 적으로 기운을 아래로 내려주면서 진정작용을 한다.또 성질은 서늘하면서 열을 내려주기도 한다.염증에 의한 부종을 가라앉히고 위액 분비를 촉진시키며 혈액의 기운과 음적인 기운을 보한다.쓴맛의 성분은 달라도 대체로 비슷한 작용을 한다.

한약재 중에서도 가장 쓴 황련(黃蓮)은 위염 치료에 꼭 쓰인다.중국 속담에 “ 인생은 황련 처럼 쓰다”는 말이 있다. 입에는 쓰지만 약이 되는 맛이 쓴맛의 핵심이 아닐까. 혀에서의 쓴맛을 몸에서는 건강한 맛으로 되돌려주는 아이러니한 역할이기도 하다. 마치 인생이 그러한 것처럼.

커피도 오래 전에는 단점 밖에 없는 것 처럼 알려졌다.불면증, 위장장애, 심장 박동이 심하다고들 했다.최근 들어서는 하루 몇 잔 이상의 블랙커피가 치매 예방이나 당뇨병 예방이 된다며 장점을 꼽고 있으니 ,평가 방법도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모양이다. 골초들이 무심히 담배 한 대를 태울 때 만큼은 인생의 온갖 시름이 다 날아가버린다고 한다.

나는 머릿속이 복잡하고 어지러울 때,진하고 쓴 커피를 큼직한 머그 가득 넉넉히 넘치게 마신다. 따뜻한 목넘김과 쓰디 쓴 커피맛을 느끼느라 다른 생각이 다 없어질 때 쯤,모든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쓴맛이 내게 주는 유익은 이런 여유,내 삶의 초심을 떠올리게 하는 여백의 시간과도 같다. 절망으로 내려가고 싶을 때,우울로 가라앉고 싶을 때 ,함께 앉아 친구 삼을 수 있는 이웃과도 같은 것이다.

잔잔한 봄비가 내리는 앞마당은 동백꽃과 수선화,주변 봄꽃들이 어울려 올해도 4월을 더욱 4월 답게 한다.이 봄날을 봄날답게 하는 것은 오늘 하루의 삶을 천천히 생각해보게 하는 쓰디 쓴 커피 한 잔의 여유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이웃에게도 부담없이 얘기한다.

“ 커피를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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